라울 이바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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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라울 이바녜스는 쿠바 출신으로 미국에서 야구 선수로 활동한 인물이다. 1992년 시애틀 매리너스에 지명되어 프로 경력을 시작했으며, 포수와 외야수를 오가며 활약했다. 캔자스시티 로열스, 필라델피아 필리스, 뉴욕 양키스 등 여러 팀을 거치며 2014년까지 메이저 리그에서 뛰었다. 2012년에는 양키스 소속으로 포스트시즌에서 맹활약하며 팀의 승리에 기여했다. 선수 은퇴 후에는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ESPN,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뛰어난 승부 근성과 긍정적인 인품으로 평가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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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울 이바녜스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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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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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션 | 좌익수 |
타석 | 좌투 |
투구 | 우투 |
출생일 | 1972년 6월 2일 |
출생지 | 뉴욕 시, 뉴욕 주, 미국 |
신장 | 189cm |
체중 | 102kg |
프로 입단 | 1992년 |
드래프트 순위 | MLB 드래프트 36라운드 |
첫 출장 | 1996년 8월 1일 |
마지막 출장 | 2014년 9월 28일 |
선수 경력 | |
소속팀 | 시애틀 매리너스 (1996–2000) 캔자스시티 로열스 (2001–2003) 시애틀 매리너스 (2004–2008) 필라델피아 필리스 (2009–2011) 뉴욕 양키스 (2012) 시애틀 매리너스 (2013)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2014) 캔자스시티 로열스 (2014) |
수상 | 올스타 (2009) |
통계 (MLB) | |
타율 | .272 |
안타 | 2,034 |
홈런 | 305 |
타점 | 1,207 |
학력 |
2. 유년 시절 및 아마추어/대학 시절
이바녜스의 부모는 1970년 쿠바에서 뉴욕으로 이민을 갔다.[1] 그의 아버지 후안 아르만도는 쿠바에서 화학자였으며 미국에서 창고에서 일했다.[2] 이바녜스는 마이애미 선셋 고등학교에 다녔으며, 야구팀에서 포수로 뛰었다.[3][4] 프레디 곤잘레스는 마이너 리그 야구 비시즌 동안 학교의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이바녜스의 포수 훈련을 도왔다.[4] 졸업 후, 그는 마이애미-데이드 커뮤니티 칼리지에 다녔고, 야구 대표 선수로 선발되었으며, 올 컨퍼런스 선수로 선정되었다.
2. 1. 유년 시절
이바녜스의 부모는 1970년 쿠바에서 뉴욕으로 이민을 갔다.[1] 그의 아버지 후안 아르만도는 쿠바에서 화학자였으며 미국에서 창고에서 일했다.[2] 이바녜스는 마이애미 선셋 고등학교에 다녔으며, 야구팀에서 포수로 뛰었다.[3][4] 프레디 곤잘레스는 마이너 리그 야구 비시즌 동안 학교의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이바녜스의 포수 훈련을 도왔다.[4] 졸업 후, 그는 마이애미-데이드 커뮤니티 칼리지에 다녔고, 야구 대표 선수로 선발되었으며, 올 컨퍼런스 선수로 선정되었다.2. 2. 아마추어/대학 시절
이바녜스의 부모는 1970년 쿠바에서 뉴욕으로 이민을 갔다.[1] 그의 아버지 후안 아르만도는 쿠바에서 화학자였으며 미국에서 창고에서 일했다.[2] 이바녜스는 마이애미 선셋 고등학교에 다녔으며, 야구팀에서 포수로 뛰었다.[3][4] 프레디 곤잘레스는 마이너 리그 야구 비시즌 동안 학교의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이바녜스의 포수 훈련을 도왔다.[4] 졸업 후, 그는 마이애미-데이드 커뮤니티 칼리지에 다녔고, 야구 대표 선수로 선발되었으며, 올 컨퍼런스 선수로 선정되었다.3. 프로 경력 (1992–2014)
## 드래프트 및 마이너 리그 (1992–96)
라울 이바녜스는 1992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드래프트에서 시애틀 매리너스에 36라운드로 지명되었다. 이바녜스는 매리너스 마이너 리그 조직에서 포수와 외야수로 다양한 레벨에서 뛰었다. 1992년 루키 레벨의 AZL 매리너스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하여 33경기에서 타율 0.308, 37안타, 8개의 2루타, 2개의 3루타, 1개의 홈런, 16타점을 기록했다. 1993년에는 A-숏 시즌의 벨링햄 매리너스와 A-클래스의 애플턴 폭스스에서 95경기, 타율 0.278, 81안타, 14개의 2루타, 2개의 3루타, 5개의 홈런, 36타점을 합작했다. 1994년에는 A-클래스의 애플턴 폭스스에서 91경기, 타율 0.312, 102안타, 30개의 2루타, 3개의 3루타, 7개의 홈런, 59타점, 10개의 도루를 기록했다. 그 시즌에 이바녜스는 팀 내 타점과 2루타에서 1위를 차지했다.
1995년, 이바녜스는 캘리포니아 리그의 A-어드밴스드 리버사이드 파일럿츠로 승격되어 95경기에서 타율 0.332, 120안타, 23개의 2루타, 9개의 3루타, 20개의 홈런, 108타점을 기록했다. 이바녜스는 리그 타점 2위, 홈런 공동 7위를 기록했다. 1996년에는 포트 시티 루스터스에서 19경기 타율 0.368, 28안타, 8개의 2루타, 1개의 3루타, 1개의 홈런, 13타점을 기록하고, 트리플 A의 타코마 레이니어스로 승격되어 111경기에서 타율 0.284, 115안타, 20개의 2루타, 3개의 3루타, 11개의 홈런, 47타점을 기록했다.
## 시애틀 매리너스 (1996–2000)
1992년 MLB 드래프트에서 36라운드(전체 1006위)로 시애틀 매리너스에 지명되어 프로에 입단했다. 마이너 리그에서는 포수 또는 외야수로 뛰면서 경험을 쌓았다.
1996년 8월 1일, 마이너 리그에서 콜업된 이바녜스는 밀워키 브루어스를 상대로 메이저 리그 데뷔전을 치렀다.[7] 그 시즌, 이바녜스는 4경기에 출전하여 안타를 기록하지 못했다.[8] 1997년, 이바녜스는 트리플 A 타코마 레이니어스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그는 111경기에서 타율 0.304, 133안타, 30개의 2루타, 3개의 3루타, 15개의 홈런, 82타점을 기록했다. 8월 10일, 이바녜스는 시카고 화이트삭스를 상대로 시즌 첫 메이저 리그 경기에 출전했다.[9] 그는 8월 16일 화이트삭스의 투수 더그 드라벡을 상대로 첫 메이저 리그 안타인 3루타를 기록했다.[10] 9월 27일, 이바녜스는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투수 마이크 오퀴스트를 상대로 메이저 리그 첫 홈런을 쳤다.[11] 메이저 리그에서 11경기를 치른 후, 이바녜스는 타율 0.154, 4안타, 1개의 3루타, 1개의 홈런, 4타점을 기록했다.[12]
1998년 시즌을 트리플 A 레이니어스에서 시작하여 52경기에서 타율 0.216, 41안타, 8개의 2루타, 1개의 3루타, 6개의 홈런, 25타점을 기록했다. 8월에 메이저 리그로 콜업된 이바녜스는 37경기에서 타율 0.255, 25안타, 7개의 2루타, 1개의 3루타, 2개의 홈런, 12타점을 기록했다.[13] 1999년 시즌 대부분을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보냈지만, 트리플 A 타코마 레이니어스에서 8경기를 출전하여 타율 0.335, 11안타를 기록했다. 1999년 매리너스에서 이바녜스는 87경기에서 타율 0.254, 54안타, 7개의 2루타, 9개의 홈런, 27타점을 기록했다.[14] 이바녜스는 세이프코 필드 역사상 세 번째 경기에서 첫 만루 홈런을 기록했다.[15] 2000년, 이바녜스는 다시 매리너스와 트리플 A 레이니어스를 오갔다. 레이니어스에서 이바녜스는 10경기에서 타율 0.250, 10안타, 4개의 2루타, 6개의 홈런을 기록했다.[16] 이바녜스는 2000년 정규 시즌에 매리너스에서 92경기에 출전했다. 그는 타율 0.229, 32안타, 8개의 2루타, 2개의 홈런, 15타점을 기록했다.[17] 이바녜스는 2000년 아메리칸 리그 디비전 시리즈에서 3경기에 출전하여 8타수 3안타를 기록했다.[18] 다음 라운드인 2000년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이바녜스는 6경기에 출전하여 안타를 기록하지 못했다. 그는 시즌 후 FA가 되었다.[19]
## 캔자스시티 로열스 (2001–03)
2001년 1월 22일에 자유 계약 선수로 캔자스시티 로열스와 계약을 맺은 이바녜스는[20] 그 해 로열스에서 104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280, 78안타, 11개의 2루타, 5개의 3루타, 13개의 홈런, 54타점을 기록했다.[20] 트리플 A 오마하 로열스에서는 8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148, 4안타를 기록했다.[20]
2002년에는 처음으로 메이저 리그에서 한 시즌을 모두 소화했다.[20] 6월 9일에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투수 마이크 팀린을 상대로 끝내기 홈런을 쳐 팀에 3 대 2 승리를 안겨주었고,[21] 6월 26일에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를 상대로 한 경기에서 2루타, 3루타, 홈런을 모두 기록했다.[22] 이바녜스는 매일 경기에 출전하는 기회에 대해 "선수 생활 동안, 나는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때때로 자신감이 흔들렸다. 나는 스스로에게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는 압박감을 많이 느꼈다. 그러나 나는 꾸준히 경기에 출전할 기회를 얻는다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라고 말했다.[23] 2002년 시즌 종료 시점에 이바녜스는 137경기에서 타율 0.294, 146안타, 37개의 2루타, 6개의 3루타, 24개의 홈런, 103타점을 기록했다. 그의 6개의 3루타는 그의 커리어 최고 기록이었다. 팀 내 2루타와 타점 부문에서 2위를, 3루타와 홈런 부문에서 공동 2위를 기록했으며,[24] 미국 야구 기자 협회의 미주리주 캔자스시티 지부 투표를 통해 조 버크 특별 공로상을 받았다.[25]
2003년 시즌 시작 전, 이바녜스는 연봉 조정을 신청했으나,[26] 로열스가 제시한 1년 300만 달러 계약을 수락하며 연봉 조정 청문회를 피했다.[27] 그 해 로열스에서 157경기에 출전한 이바녜스는 타율 0.294, 179안타, 33개의 2루타, 5개의 3루타, 18개의 홈런, 90타점을 기록했다.
## 시애틀 매리너스 재입단 (2004–08)
이바녜스는 2004년에 시애틀로 돌아와 개인 최고 기록인 .304의 타율을 기록했다.[28] 24경기 연속 득점 타점, 11경기 연속 출루로 구단 기록을 세웠고, 한 경기 6안타로 개인 최고 기록 및 구단 타이기록을 세웠다. 또한 이치로 스즈키와 함께 한 시즌에 5안타 경기를 두 번이나 기록한 유일한 매리너스 선수가 되었다.[28] 그는 UZR(수비 통계)에서 메이저 리그 좌익수 중 3위를 기록했다.[28] 2003년 11월 19일, 3년 총액 1300만 달러의 계약으로 매리너스에 복귀했다.[74][72] 2004년 8월 17일 로열스전에서 5타수 5안타, 9월 22일 애너하임 에인절스전에서 6타수 6안타로 아메리칸 리그 타이기록을 달성했다.[72]
에드가 마르티네스가 은퇴하면서 2005년 시즌 전에 지명 타자 자리를 맡게 되었다.[29] 2005년, .280의 타율에 20홈런 89타점을 기록했다.[29] 매리너스는 2005년 오프시즌에 칼 에버렛을 영입했고, 이바녜스는 다시 좌익수로 이동했다.[29] 2005년에는 은퇴한 에드가 마르티네스를 대신하는 지명타자로 정착했다. 총 162경기에 출전했고, 시즌 후반에는 부진한 애드리안 벨트레를 대신하여 3번 타자로 나섰다.[73] 시즌 종료 후에는 2007년부터 2년 총액 1100만 달러로 계약을 연장했다.[74]
2006년에는 매리너스에서 가장 생산적인 시즌을 보냈는데, 홈런(33개), 타점(123개), 2루타(33개), 3루타(5개)에서 개인 최고 기록을 세웠고, .289의 타율에 103 득점을 기록했다.[30] 호세 비드로와 칼 에버렛의 합류로 좌익수로 뛰었다. 같은 해, 103득점, 181안타, 33홈런, 123타점 등으로 자기 기록을 경신했다.
2007년에는 매리너스가 지명 타자 역할을 맡을 호세 비드로를 영입했다.[31] 이바녜스는 좌익수로 복귀하여 149경기에서 .291의 타율에 21홈런, 105타점, 80득점, 35개의 2루타를 기록했다.[31] 5월에 허리, 6월에는 햄스트링을 다쳤지만, 8월 이후에는 컨디션을 회복했다.[75]
2008년 시즌 후반기에는 .321의 타율에 12홈런 55타점을 기록했다. 그 해 162경기에 출전하여 .293의 타율, 23홈런, 110타점, 85득점, 개인 최고 기록인 43개의 2루타로 시즌을 마감했다.[32] 10월 30일에 자유 계약 선수(FA)가 되었다.
연도 | 소속 | 경기 | 타석 | 타수 | 득점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루타 | 타점 | 도루 | 도루자 | 희생번 | 희생플 | 볼넷 | 고의4구 | 사구 | 삼진 | 병살타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
2004 | SEA | 123 | 524 | 481 | 67 | 146 | 31 | 1 | 16 | 227 | 62 | 1 | 2 | 0 | 4 | 36 | 9 | 3 | 147 | 24 | .304 | .353 | .472 | .825 |
2005 | 162 | 690 | 614 | 92 | 172 | 32 | 2 | 20 | 268 | 89 | 9 | 4 | 0 | 3 | 71 | 13 | 15 | 112 | 19 | .280 | .355 | .436 | .791 | |
2006 | 159 | 699 | 626 | 103 | 181 | 33 | 5 | 33 | 323 | 123 | 2 | 4 | 0 | 7 | 65 | 7 | 13 | 127 | 13 | .289 | .353 | .516 | .792 | |
2007 | 149 | 636 | 573 | 80 | 167 | 35 | 5 | 21 | 275 | 105 | 5 | 0 | 0 | 7 | 53 | 4 | 7 | 138 | 16 | .291 | .351 | .480 | .831 | |
2008 | 162 | 707 | 635 | 85 | 186 | 43 | 3 | 23 | 304 | 110 | 2 | 4 | 0 | 5 | 64 | 0 | 1 | 76 | 5 | .293 | .358 | .479 | .837 |
- 2013년 기준, '''굵은 글씨'''는 시즌 최고 성적.
## 필라델피아 필리스 (2009–11)
2008년 12월 16일, 이바녜스는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3년, 3,150만 달러 계약을 맺었다.[33][76] 2009년 4월 9일, 시티즌스 뱅크 파크에서 필리스 소속으로 첫 홈런을 쳤는데, 우익수 방향으로 날아간 2점 홈런이었다.[34] 4월 19일에는 2점 끝내기 홈런,[35] 4월 27일에는 통산 8번째 만루 홈런을 쳐서 팀 승리에 기여했다.[35]
2009년 올스타 게임 투표에서 이바녜스는 내셔널 리그(NL) 외야수 중 2위인 4,053,355표를 얻어, 밀워키 브루어스의 라이언 브론 (4,138,559표)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표를 얻었다.[36] 2009년 월드 시리즈에서 그는 4개의 2루타, 1개의 홈런, 4타점을 기록하며 .304의 타율을 기록했다. 37세의 이바녜스는 정규 시즌 134경기에서 .272의 타율, 32개의 2루타, 34홈런, 93득점, 93타점을 기록했다. 그는 홈런(34개), 장타율(.552), OPS(.899)에서 개인 최고 기록을 세웠다. 그는 좌익수로 129경기에서 2개의 실책으로 .991의 수비율을 기록했다. 또한 UZR에서 규정 타석을 채운 메이저 리그 좌익수 중 4위를 기록했다.[37]
2010년 5월 29일 로이 할러데이의 퍼펙트 게임에서 좌익수로 출전했다.[38] 2010 시즌 동안 이바녜스는 155경기에 출전하여 .275의 타율, 37개의 2루타, 16개의 홈런, 83타점을 기록했다.[39]

2011년, 수비에서 그는 모든 메이저 리그 좌익수 중 가장 낮은 수비 범위인 1.60을 기록했다.[40][77] 그는 144경기에 출전하여 .245의 타율, 31개의 2루타, 20개의 홈런, 84타점을 기록했다.
2009년에는 4월 16일 워싱턴 내셔널스전부터 8월 9일 플로리다 말린스전까지 3할 이상의 타율을 유지하며 79경기에서 .304의 타율, 23홈런, 69타점을 기록했다. 생애 처음으로 올스타에 출전했으나, 이후 타율이 하락하여 48경기에서 .210, 8홈런, 18타점에 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애 두 번째 30홈런, 4년 연속 90타점 이상을 기록했지만, 타율과 삼진 개수는 2001년 이후 최저였다.
2010년에는 타율 .275로 전년도보다 상승했으나 홈런과 타점은 감소했다. 올스타전까지 85경기에서 .243, 7홈런, 39타점이었으나, 이후 70경기에서 .309, 9홈런, 44타점으로 회복했다.
## 뉴욕 양키스 (2012)
2012년 2월 20일, 라울 이바녜스는 뉴욕 양키스와 110만 달러 규모의 계약에 합의했고,[41] 하루 뒤 공식화되었다.[42] 그 해 이바녜스는 130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240, 19홈런, 62타점을 기록했다.[47]
스프링 트레이닝 동안 고전했지만,[43] 4월에 브렛 가드너가 부상을 당하면서 우완 투수를 상대로 좌익수 출전 시간이 늘어났다.[44] 9월 22일,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의 경기에서 13회에 동점 홈런을 쳤고,[45] 정규 시즌 마지막 두 번째 경기에서는 9회에 대타 홈런, 12회에 결승 적시타를 쳐내 양키스가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한 게임 차로 앞서게 했다.[46] 10월 3일 보스턴 레드삭스전에서는 9회말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대타 동점 2점 홈런을 쳤고, 연장 12회말 동점 상황에서는 끝내기 안타를 쳐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2012년 아메리칸 리그 디비전 시리즈 3차전에서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대타로 나와 연타석 홈런을 쳤다. 9회말, 짐 존슨을 상대로 첫 번째 홈런을 쳐 2-2 동점을 만들었고, 12회말 브라이언 머터스를 상대로 끝내기 홈런을 기록하며 양키스에 3-2 승리를 안겨 시리즈 전적을 2승 1패로 만들었다.[48][49] 이틀 뒤 오리올스와의 5차전에서는 5회말 무득점 균형을 깨는 안타를 쳤고, 양키스는 경기를 3-1로 승리하며 시리즈를 가져갔다. 2012년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1차전에서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를 상대로 9회말에 다시 한번 동점 홈런을 쳤다.
이바녜스는 여러 메이저 리그 기록을 세웠는데, 포스트시즌 경기에서 선발 출전하지 않고 홈런 2개를 친 최초의 선수,[48] 포스트시즌 경기 9회 또는 그 이후에 홈런 2개를 친 최초의 선수, 포스트시즌 끝내기 홈런을 친 최고령 선수, 포스트시즌 경기에서 홈런 2개를 친 최고령 선수였다.[49] 또한, 단일 포스트시즌에서 9회 또는 그 이후에 3개의 홈런을 친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비록 양키스가 타이거스에게 시리즈에서 패했지만, 이바녜스는 뉴욕 스포츠계의 사랑받는 인물이 되었다.[50] 10월 29일에는 자유 계약 선수(FA)가 되었다.

## 시애틀 매리너스 3번째 입단 (2013)
2012년 12월 22일, 이바녜스는 시애틀 매리너스와 275만 달러 규모의 1년 계약에 합의했고, 4일 후 계약이 공식화되었다.[51] 4월에 .158의 타율로 부진했지만, 5월에 7개의 홈런과 17타점을 기록하며 .297의 타율로 반등했다.[52] 7월 2일, 시즌 20번째 홈런을 기록하며 올스타 브레이크 전에 20개의 홈런을 친 메이저 리그 역사상 최고령 선수가 되었다.[53] 9월 21일, 통산 300번째 홈런이자 시즌 29번째 홈런을 쳐서 40세 이상 선수 중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에서 테드 윌리엄스와 동률을 이루었다.[54]
시즌 후, 이바녜스는 허치상(Hutch Award)을 수상했다.[55] 2013 시즌 동안 이바녜스는 124경기에 출전하여 .242의 타율, 29개의 홈런, 65타점을 기록했다. 시즌 막바지의 극적인 활약으로 거취가 주목받았으나, 12월 26일에 친정팀인 매리너스와 1년 계약에 합의했다[78]。
2013년 10월 31일에 FA가 되었다.
##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 (2014)
2013년 12월 18일에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와 1년 275만 달러에 계약을 맺었다는 보도가 나왔고[79], 12월 27일에 구단이 발표했다[80]。 2014년 6월 21일에 자유 계약 선수가 되었다.[58] 에인절스에서 57경기에 출전한 이바녜스는 .157의 타율, 3개의 홈런, 21타점을 기록했다.[58]
## 캔자스시티 로열스 재입단 (2014)
2013년 시즌 후, 이바녜스는 자유 계약 선수(FA)가 되었다.[81] 2014년 6월 30일, 그는 친정팀인 캔자스시티 로열스와 메이저 리그 계약을 맺었다.[59][81] 7월 2일, 이바녜스는 캔자스시티 로열스 소속으로 시즌 첫 홈런을 기록했는데, 이는 로열스 역대 최고령 홈런(42세 31일) 기록이었다.[60][82]
7월 21일, 팀이 48승 50패로 고전하고 있을 때, 네드 요스트 감독이 팀의 경기력 향상을 언급한 후, 이바녜스는 선수들만의 회의를 주도했다. 에릭 호스머와 로렌조 케인을 포함한 선수들은 이 회의가 선수들의 태도를 바꾸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61] 이후 로열스는 다음 30경기 중 24승을 거두며 와일드 카드 자격을 얻었고,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플레이오프에서 스윕하며 2014년 월드 시리즈에 진출했지만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게 패했다.[61] 이바녜스는 와일드 카드 게임을 제외하고는 로열스의 포스트시즌 로스터에 포함되지 않았으며, 이 경기에서도 출전하지 않았다.
시즌 후, 이바녜스는 2014년 탬파베이 레이스 시즌에서 조 매든 감독이 사임하면서 공석이 된 감독 자리를 놓고 면접을 보았고, 2014년 11월 21일 구단은 이바녜스를 최종 후보 3인 중 한 명으로 발표했다. 그는 당시 선수로서 공식적으로 은퇴하지 않은 상태였다.[62]
3. 1. 드래프트 및 마이너 리그 (1992–96)
라울 이바녜스는 1992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드래프트에서 시애틀 매리너스에 36라운드로 지명되었다. 이바녜스는 매리너스 마이너 리그 조직에서 포수와 외야수로 다양한 레벨에서 뛰었다. 1992년 루키 레벨의 AZL 매리너스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하여 33경기에서 타율 0.308, 37안타, 8개의 2루타, 2개의 3루타, 1개의 홈런, 16타점을 기록했다. 1993년에는 A-숏 시즌의 벨링햄 매리너스와 A-클래스의 애플턴 폭스스에서 95경기, 타율 0.278, 81안타, 14개의 2루타, 2개의 3루타, 5개의 홈런, 36타점을 합작했다. 1994년에는 A-클래스의 애플턴 폭스스에서 91경기, 타율 0.312, 102안타, 30개의 2루타, 3개의 3루타, 7개의 홈런, 59타점, 10개의 도루를 기록했다. 그 시즌에 이바녜스는 팀 내 타점과 2루타에서 1위를 차지했다.1995년, 이바녜스는 캘리포니아 리그의 A-어드밴스드 리버사이드 파일럿츠로 승격되어 95경기에서 타율 0.332, 120안타, 23개의 2루타, 9개의 3루타, 20개의 홈런, 108타점을 기록했다. 이바녜스는 리그 타점 2위, 홈런 공동 7위를 기록했다. 1996년에는 포트 시티 루스터스에서 19경기 타율 0.368, 28안타, 8개의 2루타, 1개의 3루타, 1개의 홈런, 13타점을 기록하고, 트리플 A의 타코마 레이니어스로 승격되어 111경기에서 타율 0.284, 115안타, 20개의 2루타, 3개의 3루타, 11개의 홈런, 47타점을 기록했다.
3. 2. 시애틀 매리너스 (1996–2000)
1992년 MLB 드래프트에서 36라운드(전체 1006위)로 시애틀 매리너스에 지명되어 프로에 입단했다. 마이너 리그에서는 포수 또는 외야수로 뛰면서 경험을 쌓았다.1996년 8월 1일, 마이너 리그에서 콜업된 이바녜스는 밀워키 브루어스를 상대로 메이저 리그 데뷔전을 치렀다.[7] 그 시즌, 이바녜스는 4경기에 출전하여 안타를 기록하지 못했다.[8] 1997년, 이바녜스는 트리플 A 타코마 레이니어스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그는 111경기에서 타율 0.304, 133안타, 30개의 2루타, 3개의 3루타, 15개의 홈런, 82타점을 기록했다. 8월 10일, 이바녜스는 시카고 화이트삭스를 상대로 시즌 첫 메이저 리그 경기에 출전했다.[9] 그는 8월 16일 화이트삭스의 투수 더그 드라벡을 상대로 첫 메이저 리그 안타인 3루타를 기록했다.[10] 9월 27일, 이바녜스는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투수 마이크 오퀴스트를 상대로 메이저 리그 첫 홈런을 쳤다.[11] 메이저 리그에서 11경기를 치른 후, 이바녜스는 타율 0.154, 4안타, 1개의 3루타, 1개의 홈런, 4타점을 기록했다.[12]
1998년 시즌을 트리플 A 레이니어스에서 시작하여 52경기에서 타율 0.216, 41안타, 8개의 2루타, 1개의 3루타, 6개의 홈런, 25타점을 기록했다. 8월에 메이저 리그로 콜업된 이바녜스는 37경기에서 타율 0.255, 25안타, 7개의 2루타, 1개의 3루타, 2개의 홈런, 12타점을 기록했다.[13] 1999년 시즌 대부분을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보냈지만, 트리플 A 타코마 레이니어스에서 8경기를 출전하여 타율 0.335, 11안타를 기록했다. 1999년 매리너스에서 이바녜스는 87경기에서 타율 0.254, 54안타, 7개의 2루타, 9개의 홈런, 27타점을 기록했다.[14] 이바녜스는 세이프코 필드 역사상 세 번째 경기에서 첫 만루 홈런을 기록했다.[15] 2000년, 이바녜스는 다시 매리너스와 트리플 A 레이니어스를 오갔다. 레이니어스에서 이바녜스는 10경기에서 타율 0.250, 10안타, 4개의 2루타, 6개의 홈런을 기록했다.[16] 이바녜스는 2000년 정규 시즌에 매리너스에서 92경기에 출전했다. 그는 타율 0.229, 32안타, 8개의 2루타, 2개의 홈런, 15타점을 기록했다.[17] 이바녜스는 2000년 아메리칸 리그 디비전 시리즈에서 3경기에 출전하여 8타수 3안타를 기록했다.[18] 다음 라운드인 2000년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이바녜스는 6경기에 출전하여 안타를 기록하지 못했다. 그는 시즌 후 FA가 되었다.[19]
3. 3. 캔자스시티 로열스 (2001–03)
2001년 1월 22일에 자유 계약 선수로 캔자스시티 로열스와 계약을 맺은 이바녜스는[20] 그 해 로열스에서 104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280, 78안타, 11개의 2루타, 5개의 3루타, 13개의 홈런, 54타점을 기록했다.[20] 트리플 A 오마하 로열스에서는 8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148, 4안타를 기록했다.[20]2002년에는 처음으로 메이저 리그에서 한 시즌을 모두 소화했다.[20] 6월 9일에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투수 마이크 팀린을 상대로 끝내기 홈런을 쳐 팀에 3 대 2 승리를 안겨주었고,[21] 6월 26일에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를 상대로 한 경기에서 2루타, 3루타, 홈런을 모두 기록했다.[22] 이바녜스는 매일 경기에 출전하는 기회에 대해 "선수 생활 동안, 나는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때때로 자신감이 흔들렸다. 나는 스스로에게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는 압박감을 많이 느꼈다. 그러나 나는 꾸준히 경기에 출전할 기회를 얻는다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라고 말했다.[23] 2002년 시즌 종료 시점에 이바녜스는 137경기에서 타율 0.294, 146안타, 37개의 2루타, 6개의 3루타, 24개의 홈런, 103타점을 기록했다. 그의 6개의 3루타는 그의 커리어 최고 기록이었다. 팀 내 2루타와 타점 부문에서 2위를, 3루타와 홈런 부문에서 공동 2위를 기록했으며,[24] 미국 야구 기자 협회의 미주리주 캔자스시티 지부 투표를 통해 조 버크 특별 공로상을 받았다.[25]
2003년 시즌 시작 전, 이바녜스는 연봉 조정을 신청했으나,[26] 로열스가 제시한 1년 300만 달러 계약을 수락하며 연봉 조정 청문회를 피했다.[27] 그 해 로열스에서 157경기에 출전한 이바녜스는 타율 0.294, 179안타, 33개의 2루타, 5개의 3루타, 18개의 홈런, 90타점을 기록했다.
3. 4. 시애틀 매리너스 재입단 (2004–08)
이바녜스는 2004년에 시애틀로 돌아와 개인 최고 기록인 .304의 타율을 기록했다.[28] 24경기 연속 득점 타점, 11경기 연속 출루로 구단 기록을 세웠고, 한 경기 6안타로 개인 최고 기록 및 구단 타이기록을 세웠다. 또한 이치로 스즈키와 함께 한 시즌에 5안타 경기를 두 번이나 기록한 유일한 매리너스 선수가 되었다.[28] 그는 UZR(수비 통계)에서 메이저 리그 좌익수 중 3위를 기록했다.[28] 2003년 11월 19일, 3년 총액 1300만 달러의 계약으로 매리너스에 복귀했다.[74][72] 2004년 8월 17일 로열스전에서 5타수 5안타, 9월 22일 애너하임 에인절스전에서 6타수 6안타로 아메리칸 리그 타이기록을 달성했다.[72]에드가 마르티네스가 은퇴하면서 2005년 시즌 전에 지명 타자 자리를 맡게 되었다.[29] 2005년, .280의 타율에 20홈런 89타점을 기록했다.[29] 매리너스는 2005년 오프시즌에 칼 에버렛을 영입했고, 이바녜스는 다시 좌익수로 이동했다.[29] 2005년에는 은퇴한 에드가 마르티네스를 대신하는 지명타자로 정착했다. 총 162경기에 출전했고, 시즌 후반에는 부진한 애드리안 벨트레를 대신하여 3번 타자로 나섰다.[73] 시즌 종료 후에는 2007년부터 2년 총액 1100만 달러로 계약을 연장했다.[74]
2006년에는 매리너스에서 가장 생산적인 시즌을 보냈는데, 홈런(33개), 타점(123개), 2루타(33개), 3루타(5개)에서 개인 최고 기록을 세웠고, .289의 타율에 103 득점을 기록했다.[30] 호세 비드로와 칼 에버렛의 합류로 좌익수로 뛰었다. 같은 해, 103득점, 181안타, 33홈런, 123타점 등으로 자기 기록을 경신했다.
2007년에는 매리너스가 지명 타자 역할을 맡을 호세 비드로를 영입했다.[31] 이바녜스는 좌익수로 복귀하여 149경기에서 .291의 타율에 21홈런, 105타점, 80득점, 35개의 2루타를 기록했다.[31] 5월에 허리, 6월에는 햄스트링을 다쳤지만, 8월 이후에는 컨디션을 회복했다.[75]
2008년 시즌 후반기에는 .321의 타율에 12홈런 55타점을 기록했다. 그 해 162경기에 출전하여 .293의 타율, 23홈런, 110타점, 85득점, 개인 최고 기록인 43개의 2루타로 시즌을 마감했다.[32] 10월 30일에 자유 계약 선수(FA)가 되었다.
연도 | 소속 | 경기 | 타석 | 타수 | 득점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루타 | 타점 | 도루 | 도루자 | 희생번 | 희생플 | 볼넷 | 고의4구 | 사구 | 삼진 | 병살타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
2004 | SEA | 123 | 524 | 481 | 67 | 146 | 31 | 1 | 16 | 227 | 62 | 1 | 2 | 0 | 4 | 36 | 9 | 3 | 147 | 24 | .304 | .353 | .472 | .825 |
2005 | 162 | 690 | 614 | 92 | 172 | 32 | 2 | 20 | 268 | 89 | 9 | 4 | 0 | 3 | 71 | 13 | 15 | 112 | 19 | .280 | .355 | .436 | .791 | |
2006 | 159 | 699 | 626 | 103 | 181 | 33 | 5 | 33 | 323 | 123 | 2 | 4 | 0 | 7 | 65 | 7 | 13 | 127 | 13 | .289 | .353 | .516 | .792 | |
2007 | 149 | 636 | 573 | 80 | 167 | 35 | 5 | 21 | 275 | 105 | 5 | 0 | 0 | 7 | 53 | 4 | 7 | 138 | 16 | .291 | .351 | .480 | .831 | |
2008 | 162 | 707 | 635 | 85 | 186 | 43 | 3 | 23 | 304 | 110 | 2 | 4 | 0 | 5 | 64 | 0 | 1 | 76 | 5 | .293 | .358 | .479 | .837 |
- 2013년 기준, '''굵은 글씨'''는 시즌 최고 성적.
3. 5. 필라델피아 필리스 (2009–11)
2008년 12월 16일, 이바녜스는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3년, 3,150만 달러 계약을 맺었다.[33][76] 2009년 4월 9일, 시티즌스 뱅크 파크에서 필리스 소속으로 첫 홈런을 쳤는데, 우익수 방향으로 날아간 2점 홈런이었다.[34] 4월 19일에는 2점 끝내기 홈런,[35] 4월 27일에는 통산 8번째 만루 홈런을 쳐서 팀 승리에 기여했다.[35]2009년 올스타 게임 투표에서 이바녜스는 내셔널 리그(NL) 외야수 중 2위인 4,053,355표를 얻어, 밀워키 브루어스의 라이언 브론 (4,138,559표)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표를 얻었다.[36] 2009년 월드 시리즈에서 그는 4개의 2루타, 1개의 홈런, 4타점을 기록하며 .304의 타율을 기록했다. 37세의 이바녜스는 정규 시즌 134경기에서 .272의 타율, 32개의 2루타, 34홈런, 93득점, 93타점을 기록했다. 그는 홈런(34개), 장타율(.552), OPS(.899)에서 개인 최고 기록을 세웠다. 그는 좌익수로 129경기에서 2개의 실책으로 .991의 수비율을 기록했다. 또한 UZR에서 규정 타석을 채운 메이저 리그 좌익수 중 4위를 기록했다.[37]
2010년 5월 29일 로이 할러데이의 퍼펙트 게임에서 좌익수로 출전했다.[38] 2010 시즌 동안 이바녜스는 155경기에 출전하여 .275의 타율, 37개의 2루타, 16개의 홈런, 83타점을 기록했다.[39]
2011년, 수비에서 그는 모든 메이저 리그 좌익수 중 가장 낮은 수비 범위인 1.60을 기록했다.[40][77] 그는 144경기에 출전하여 .245의 타율, 31개의 2루타, 20개의 홈런, 84타점을 기록했다.
2009년에는 4월 16일 워싱턴 내셔널스전부터 8월 9일 플로리다 말린스전까지 3할 이상의 타율을 유지하며 79경기에서 .304의 타율, 23홈런, 69타점을 기록했다. 생애 처음으로 올스타에 출전했으나, 이후 타율이 하락하여 48경기에서 .210, 8홈런, 18타점에 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애 두 번째 30홈런, 4년 연속 90타점 이상을 기록했지만, 타율과 삼진 개수는 2001년 이후 최저였다.
2010년에는 타율 .275로 전년도보다 상승했으나 홈런과 타점은 감소했다. 올스타전까지 85경기에서 .243, 7홈런, 39타점이었으나, 이후 70경기에서 .309, 9홈런, 44타점으로 회복했다.
3. 6. 뉴욕 양키스 (2012)
2012년 2월 20일, 라울 이바녜스는 뉴욕 양키스와 110만 달러 규모의 계약에 합의했고,[41] 하루 뒤 공식화되었다.[42] 그 해 이바녜스는 130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240, 19홈런, 62타점을 기록했다.[47]스프링 트레이닝 동안 고전했지만,[43] 4월에 브렛 가드너가 부상을 당하면서 우완 투수를 상대로 좌익수 출전 시간이 늘어났다.[44] 9월 22일,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의 경기에서 13회에 동점 홈런을 쳤고,[45] 정규 시즌 마지막 두 번째 경기에서는 9회에 대타 홈런, 12회에 결승 적시타를 쳐내 양키스가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한 게임 차로 앞서게 했다.[46] 10월 3일 보스턴 레드삭스전에서는 9회말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대타 동점 2점 홈런을 쳤고, 연장 12회말 동점 상황에서는 끝내기 안타를 쳐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2012년 아메리칸 리그 디비전 시리즈 3차전에서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대타로 나와 연타석 홈런을 쳤다. 9회말, 짐 존슨을 상대로 첫 번째 홈런을 쳐 2-2 동점을 만들었고, 12회말 브라이언 머터스를 상대로 끝내기 홈런을 기록하며 양키스에 3-2 승리를 안겨 시리즈 전적을 2승 1패로 만들었다.[48][49] 이틀 뒤 오리올스와의 5차전에서는 5회말 무득점 균형을 깨는 안타를 쳤고, 양키스는 경기를 3-1로 승리하며 시리즈를 가져갔다. 2012년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1차전에서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를 상대로 9회말에 다시 한번 동점 홈런을 쳤다.
이바녜스는 여러 메이저 리그 기록을 세웠는데, 포스트시즌 경기에서 선발 출전하지 않고 홈런 2개를 친 최초의 선수,[48] 포스트시즌 경기 9회 또는 그 이후에 홈런 2개를 친 최초의 선수, 포스트시즌 끝내기 홈런을 친 최고령 선수, 포스트시즌 경기에서 홈런 2개를 친 최고령 선수였다.[49] 또한, 단일 포스트시즌에서 9회 또는 그 이후에 3개의 홈런을 친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비록 양키스가 타이거스에게 시리즈에서 패했지만, 이바녜스는 뉴욕 스포츠계의 사랑받는 인물이 되었다.[50] 10월 29일에는 자유 계약 선수(FA)가 되었다.
3. 7. 시애틀 매리너스 3번째 입단 (2013)
2012년 12월 22일, 이바녜스는 시애틀 매리너스와 275만 달러 규모의 1년 계약에 합의했고, 4일 후 계약이 공식화되었다.[51] 4월에 .158의 타율로 부진했지만, 5월에 7개의 홈런과 17타점을 기록하며 .297의 타율로 반등했다.[52] 7월 2일, 시즌 20번째 홈런을 기록하며 올스타 브레이크 전에 20개의 홈런을 친 메이저 리그 역사상 최고령 선수가 되었다.[53] 9월 21일, 통산 300번째 홈런이자 시즌 29번째 홈런을 쳐서 40세 이상 선수 중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에서 테드 윌리엄스와 동률을 이루었다.[54]시즌 후, 이바녜스는 허치상(Hutch Award)을 수상했다.[55] 2013 시즌 동안 이바녜스는 124경기에 출전하여 .242의 타율, 29개의 홈런, 65타점을 기록했다. 시즌 막바지의 극적인 활약으로 거취가 주목받았으나, 12월 26일에 친정팀인 매리너스와 1년 계약에 합의했다[78]。
2013년 10월 31일에 FA가 되었다.
3. 8.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 (2014)
2013년 12월 18일에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과 1년 275만 달러에 계약을 맺었다는 보도가 나왔고[79], 12월 27일에 구단이 발표했다[80]。 2014년 6월 21일에 자유 계약 선수가 되었다.[58] 에인절스에서 57경기에 출전한 이바녜스는 .157의 타율, 3개의 홈런, 21타점을 기록했다.[58]3. 9. 캔자스시티 로열스 재입단 (2014)
2013년 시즌 후, 이바녜스는 자유 계약 선수(FA)가 되었다.[81] 2014년 6월 30일, 그는 친정팀인 캔자스시티 로열스와 메이저 리그 계약을 맺었다.[59][81] 7월 2일, 이바녜스는 캔자스시티 로열스 소속으로 시즌 첫 홈런을 기록했는데, 이는 로열스 역대 최고령 홈런(42세 31일) 기록이었다.[60][82]7월 21일, 팀이 48승 50패로 고전하고 있을 때, 네드 요스트 감독이 팀의 경기력 향상을 언급한 후, 이바녜스는 선수들만의 회의를 주도했다. 에릭 호스머와 로렌조 케인을 포함한 선수들은 이 회의가 선수들의 태도를 바꾸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61] 이후 로열스는 다음 30경기 중 24승을 거두며 와일드 카드 자격을 얻었고,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플레이오프에서 스윕하며 2014년 월드 시리즈에 진출했지만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게 패했다.[61] 이바녜스는 와일드 카드 게임을 제외하고는 로열스의 포스트시즌 로스터에 포함되지 않았으며, 이 경기에서도 출전하지 않았다.
시즌 후, 이바녜스는 2014년 탬파베이 레이스 시즌에서 조 매든 감독이 사임하면서 공석이 된 감독 자리를 놓고 면접을 보았고, 2014년 11월 21일 구단은 이바녜스를 최종 후보 3인 중 한 명으로 발표했다. 그는 당시 선수로서 공식적으로 은퇴하지 않은 상태였다.[62]
4. 은퇴 후 경력
2016년 2월 2일, 이바녜스는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 야구 운영 사장인 앤드루 프리드먼의 특별 보좌관으로 고용되었다.[63][83] 2016년 4월, ESPN은 이바녜스를 분석가로 고용했다.[64] 이바녜스는 ESPN 데포르테스의 야구 해설자로도 활동했다.[84]
2021년, 이바녜스와 마이클 힐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의 현장 운영 수석 부사장으로 임명되어 심판, 징계 및 기타 현장 문제에 대한 책임을 맡았다.[65] 2024년, 그는 이 역할을 떠나 다저스로 돌아가 야구 개발 및 특별 프로젝트 부사장이 되었다.[66]
이바녜스는 2024년 올스타 퓨처스 게임에서 아메리카 리그 팀의 벤치 코치를 맡았다.[67]
5. 선수로서의 특징
승부 근성이 강한 타격이 특징인 클러치 히터이다.[85] 외야수로서는 주로 좌익수를 맡으며, 2007년 시점에서는 수비 범위는 보통, 어깨는 다소 약하고 원거리 송구에 확실성이 부족했으나, 좌익수로서는 무난한 수비력으로 평가받았다.[86] 그러나 2010년 이후에는 저조한 [레인지 팩터]를 기록하고 있다. 2006년부터 3년 연속 100타점 이상을 기록하였다.
6. 인물
이바녜스는 조부모를 통해 스페인계 혈통을 가지고 있지만, 스페인 야구 국가대표팀의 제안을 거절했다.[68] 이바녜스는 아내 테리베트와 사이에 두 아들과 세 딸을 두고 있다.[69] 2009년 오프시즌에는 글루텐과 유제품 알레르기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특별 식단을 시작했으며, 원정 경기 중에도 필라델피아에서 음식을 배달받았다.[70]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가 메이저 리그 선수 29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이바녜스는 짐 토미에 이어 두 번째로 친절한 메이저 리그 선수로 뽑혔다.[71]
필라델피아 필리스 소속 당시,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잡지의 기획으로 선수 간 투표를 통해 선정하는 "호감 가는 메이저리거"에서 짐 토미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87]
시애틀 매리너스 시절 팀 동료였고, 뉴욕 양키스에서는 옆 락커를 사용했던 이치로는 "그 사람(이바녜스)은 정말 좋은 사람이다. 그를 나쁘게 말하는 사람은 절대 없고, 그렇다고 가벼운 사람도 아니다. 매우 드문 사람"이라고 이바녜스의 인품을 극찬했다.[88]
또한, 일본어를 잘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6. 1. 평가
필라델피아 필리스 소속 당시,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잡지의 기획으로 선수 간 투표를 통해 선정하는 "호감 가는 메이저리거"에서 짐 토미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87]시애틀 매리너스 시절 팀 동료였고, 뉴욕 양키스에서는 옆 락커를 사용했던 이치로는 "그 사람(이바녜스)은 정말 좋은 사람이다. 그를 나쁘게 말하는 사람은 절대 없고, 그렇다고 가벼운 사람도 아니다. 매우 드문 사람"이라고 이바녜스의 인품을 극찬했다.[88]
또한, 일본어를 잘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6. 2. 기타
이바녜스는 조부모를 통해 스페인계 혈통을 가지고 있지만, 스페인 야구 국가대표팀의 제안을 거절했다.[68] 이바녜스는 아내 테리베트와 사이에 두 아들과 세 딸을 두고 있다.[69] 2009년 오프시즌에는 글루텐과 유제품 알레르기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특별 식단을 시작했으며, 원정 경기 중에도 필라델피아에서 음식을 배달받았다.[70]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가 메이저 리그 선수 29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이바녜스는 짐 토미에 이어 두 번째로 친절한 메이저 리그 선수로 뽑혔다.[71][87] 시애틀 매리너스 시절 팀 동료였고, 뉴욕 양키스에서는 옆 라커를 사용했던 이치로는 "그 사람(이바녜스)은 정말 좋은 사람이다. 그를 나쁘게 말하는 사람은 절대 없고, 그렇다고 가벼운 사람도 아니다. 매우 드문 사람"이라고 이바녜스의 인품을 칭찬했다.[88]
또한, 일본어를 잘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7. 상세 정보
7. 1. 연도별 타격 성적
도
속
기
석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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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
루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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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
타
점
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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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
4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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